금융사-빅테크간 ‘기울어진 운동장’ 해소 기대

[FE금융경제신문=안다정 기자] 지난 3월 25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금융소비자보호법(금소법) 시행이 100일 남았다. 금융사의 금융상품 판매 시 설명 의무가 강화되고, 불공정행위가 적발될 경우 위반행위와 관련된 수입의 최대 50%까지 징벌적 과징금을 부과한다는 내용이 골자다. 금융 소비자의 권리 구제 및 금융사고 사전 예방에 방점이 찍혀있는 금소법 시행을 앞두고 금융경제신문이 특집을 기획했다.
금소법 제정을 관장했던 곳은 금융당국이다. 금융감독원은 금융소비자보호처(금소처)를 지난 2012년 5월 15일 금감원 내 기구로 설치하고, 금융소비자 보호 기능을 강화하겠단 계획을 실행해나갔다.
금소처 발족은 2011년 9월 국무총리실에서 권고한 금융감독 혁신방안의 일환이었다. 기존 금융감독원은 금융기관에 대한 감독과 검사 업무를 실시하고 있었으나, 금융소비자 보호 부문을 분리하면서 금소처를 금감원장 직속 기구로 신설했다. 금소처를 금감원 내 기구로 설립돼있지만 준독립기관으로 여겨지며, 금융소비자 피해 보상, 피해 구제, 분쟁조정 등의 역할을 수행한다.
금소법이 첫 발을 떼는 시점은 내년 3월 25일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으로 인해 대면 영업이 상대적으로 위축됐지만, 전 금융권에 걸쳐 금소법 대비를 위한 준비는 분주하게 이뤄지고 있다. 최근 금융업권을 대상으로 금소법 시행 전 개선사항을 제출하라는 움직임이 있었고, 내년 3월부터 금융권 영업현장이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19 확산으로 비대면(언택트) 기조가 확산됐어도 금소법의 제약을 가장 강하게 적용받는 곳은 영업현장이라는 시각도 있다. 작년 이후 지속되고 있는 사모펀드 사태 및 보험금 미지급 분쟁 등으로 인해 전방위적으로 영업 현장에 대한 규제가 적용되면서 ‘규제 위에 규제’라는 평가가 나온다. 금융소비자보호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판매 프로세스 전 과정에 모니터링을 상시화하고, 녹취록 등을 남기는 등 과거와는 다른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6대 판매규제가 적용되면서 각 금융권 영업현장은 이미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의무적으로 창구 녹음을 실시하던 증권사뿐 아니라 은행에서도 이러한 흐름이 감지되고 있고, 금융민원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보험업계는 대외적인 목소리를 높여나가는 중이다. 금소법이 쏘아올린 작은공이 영업현장을 크게 흔들고 있는 셈이다.
모든 업계에서 가장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부분은 ‘청약철회권’이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일부 도입하면서 영업 위축이 불가피하지만, 일부 소비자의 ‘블랙컨슈머’ 행태가 두드러지면 강한 규제 때문에 오히려 금융사가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와 같은 부작용이 양산되면 금소법의 필요성 또한 재고 될 수 있어 금융당국은 현재 ‘블랙컨슈머’를 차단하기 위한 방법을 강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금소법 시행은 단기적으로는 금융업계에 부정적일 수 있으나, 장기적으로는 금융 소비자의 신뢰를 얻을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 금융 분쟁의 원만한 조정과 불완전 판매를 근절하는 것. 또 대출 시 약탈적인 행태를 바로잡아 손실을 최소화하는 것이 금소법의 목적이므로 과당 경쟁보다 건전한 금융권 문화가 형성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은행
지난해 해외 금리연계형 파생연계펀드(DLF) 대규모 원금손실 사태가 발생하면서 금융소비자 권리 강화라는 여론이 커졌고 올해 초 2011년 첫 발의 된 이후 9년 동안 잠자던 ‘금융소비자 보호에 관한 법률안(금소법)’이 결국 국회 본회의 문턱을 넘으면서 결국 은행권 DLF 사태의 대가로 금소법이라는 큰 부담을 떠안게 됐다.
금소법의 입법 취지가 금융소비자와 금융회사간 ‘기울어진 운동장’을 극복하고 소비자가 대등하게 권리를 주장하고 보호받도록 하는 데 있기 때문에 금소법 시행 이후 소비자의 권리는 커지고 은행들의 의무는 늘어나게 된다.
당장 은행들은 오프라인 영업 현장에서 위축을 가장 걱정하고 있다.
금소법의 핵심이 자본시장법 등 개별 금융업법에서 일부 금융상품에 한정해 적용되던 ‘6대 판매규제’를 원칙적으로 모든 금융상품에 적용하고 이를 어길 시 위반행위 관련 수입의 최대 50%까지 과징금이 부과되는 등 강한 제재를 받게 되는 것인 만큼 은행들은 6대 판매규제를 철저히 대비하고 있는 상황이다.
은행권은 6대 판매규제 중 ‘설명의무’에 가장 난색을 표하고 있는데 금소법 하에서 은행에서 펀드 등을 판매할 때 상품을 설계한 자산운용사(제조사) 아닌 판매업무 수탁계약을 체결한 은행(판매사)이 상품설명서를 작성해야 하고 예금상품을 제외한 금융상품 권유시 소비자에게 핵심설명서를 제공해야할 의무가 생긴다. 또한 상품숙지의무도 생겨나 상품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사람이 상품을 권유하는 행위가 금지된다.
설명의무에 대한 기준의 모호성이 클수록 소비자와 분쟁 발생시 은행에 대한 책임소재가 커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금소법 시행을 앞두고 은행권의 부담이 가중되는 상황이다. 금융소비자 개인간의 금융상품 이해도가 상이하기 때문에 규정이 모호할수록 이를 객관적으로 입증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이에 아예 영업점 오프라인 창구에서 고객광의 전 상담과정을 녹음·녹취하는 방안도 대안으로 거론된다.
다만, 비관적인 전망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일각에서는 금소법이 은행과 소비자간 ‘기울어진 운동장’도 바로 세울 것이지만 빠른 속도로 금융업으로 침투하는 빅테크와 기존 은행권과의 ‘기울어진 운동장’도 바로 잡을 것이라 관측도 나온다.
금소법은 네이버, 카카오 등 빅테크 업체도 금융업을 영위하게 되면 원칙적으로 적용받게 되는데 소비자보호에 대한 규제가 높은 수록 금융업을 영위해보지 않은 플랫폼 업체에게 큰 진입장벽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말도 많고 탈도 많던 금소법은 시행을 3개월 앞두고 있다. 금소법이 은행산업 전반에 약이 될지 독이 될지는 시행 이후를 지켜봐야 할 듯 하다.
◇증권
금융소비자보호법(금소법)이 시행되면 가장 타격을 입게 될 곳은 사모펀드 업계다. 은행과 증권사 영업점에서 팔려나간 사모펀드들은 라임과 옵티머스 사태를 거치며 설정을 꺼려하는 상품이 되고 있는 탓이다. 실제로 사모펀드 전체가 부실화된 것이 아님에도 대규모 환매 중단 사태로 인해 신뢰가 밑바닥으로 곤두박질치게 됐다.
증권업계 관계자들이 ‘사모펀드 대란’이 발생한 환경으로 언급하는 공통사항이 있다. 규제 완화 이후 우후죽순 검증되지 못한 부실한 운용사가 생겨났고, 금융당국의 사후 모니터링이 미흡했다는 사실이었다.
이에 따라 자산 실사 등 증권사의 전통적인 먹거리였던 IB(투자은행) 부문도 의심의 눈초리를 받게 됐다. 실사를 기반으로 자산을 심사해야 하지만, 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금소법 시행 후 신뢰를 바탕으로 영업에 나서야 하는 증권업계가 ‘초가삼간’ 사태에 빠진 셈이다.
핵심은 사모펀드 사태의 중심에는 자산을 검증해야 하는 수탁사, 사무관리사, 판매사, 운용사의 공동책임이 발동하지 않았기 때문이지만, 투자자와 가장 가까이 있는 판매사의 책임이 가장 중요하게 대두되면서 유탄은 증권업계로 향했다.
코로나19 이후 비대면(언택트) 기조가 활성화됐지만, 여전히 금융 취약계층에 대한 현실적인 지원 방안은 요원하다. 금융 사기의 ‘단골’ 타깃이 되는 노인층이 화두로 떠오르고 있지만, 우리나라의 노년층 금융문맹도는 심각한 수준이다.
이 같은 환경 하에 금융 교육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최근 동학개미 등 ‘주린이’의 주식시장 유입으로 유례없이 증시 활황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에 금융 교육에 대한 소구가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금소법 시행에 앞서 신규로 증권시장 유입이 많아지고, 기존 금융취약 계층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공통적으로 나오고 있어 금융 교육의 ‘시금석’을 놓기에 좋은 환경이 조성됐다고 볼 수 있다.
제도의 패러다임이 변화하면서 제도가 확실히 정착하기 까지는 시일이 걸릴 수도 있지만, 금융소비자와 금융사의 분쟁 조정이 원활히 된다면 사회·경제적 비용도 줄어들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수십 년 간 지속되는 금융 농성 및 분쟁조정 절차와 법적인 송사 등도 실효성 있는 구제 수단에 의해 줄어들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보험
내년 3월 시행을 앞둔 금융소비자보호법(금소법)은 지난 10월 시행령 제정안이 입법 예고됐다. 입법예고안에 따르면 보험상품은 보장성상품으로, 보험약관을 포함한 보험회사가 취급하는 대출은 대출성 상품으로 규제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기존에는 개괄적으로 보험사에서 나온 상품이나 서비스라면 보험업의 일환으로 봐왔지만, 대출의 성격을 품고 있는 서비스에 대해서는 세부적으로 갈래를 나눠보겠다는 것으로 수렴한다. 기존의 규제와는 다른 해석을 적용받게 되는 셈이다.
화두는 역시나 위법계약해지권이다. 업계는 행사기간, 정당한 사유, 계약 해지 관련 비용 등 세부 사항에 관한 면밀한 검토와 합리적인 규정이 필요하다는 시각을 내보이고 있다. 이는 보험사와, 보험판매업자의 공통적인 의견이다.
이와 달리 소비자보호단체는 금소법의 취지 자체에는 찬성하나, 금소법을 ‘반쪽짜리’라고 본다. 법령으로 금융소비자보호의 범위를 규정하면 외려 이를 이용해 보험사가 면죄부를 받을 수 있다는 취지다. 민원이 다양하고, 보험금 및 보상과 관련 문제에서 상대적으로 소수일 수밖에 없었던 소비자 또한 금소법 이후의 보험 산업을 우려하고 있는 셈이다.
같은 듯 다른 의견을 일치단결해 주장하고 있는 보험업계와 이와는 반대편에 서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보험 소비자 간의 줄다리기가 내년 3월까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보험업계에서 늘 뜨거운 감자로 여겨졌던 불완전 판매 등 판매 프로세스 개선이 이뤄진다면 보험업계 전체의 분쟁이 줄어들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상반된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에서 ‘영업 활성화’와 ‘소비자 보호’라는 두 가지 목적을 살릴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업계와 소비자 모두 ‘소비자 보호’라는 대전제에는 동감하고 있기 때문에 차후 논의 과정에서 벌어질 갈등이 잘 봉합될 수 있을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
안다정 기자 yieldabc@fe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