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경의 경제서가(書架)] 나를 채우는 그림 인문학
[금경의 경제서가(書架)] 나를 채우는 그림 인문학
  • 권경희 기자
  • 승인 2021.04.30 10: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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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이 막막할 때 그림을 보다

 

[금융경제신문=권경희 기자] 인문학의 시대라고 하지만 인문학은 어쩐지 우리 삶과 먼 곳에 있는 것 같다. 이 책은 아름다운 명화와 인문학을 통해 우리 인생의 문제와 아픔을 이야기한다. 우리가 사랑하는 그림과 예술가의 삶에 담긴 인생의 비밀과 삶을 바라보는 혜안을 찾는다.

많은 사람이 미술과 인문학을 접근하기 어려운 취미라고 생각한다. 지금의 우리 삶과 어울리지 않는 고리타분한 시대의 산물이 아니냐고 말이다. 하지만 미술의 진정한 매력에 빠져보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불완전하고 불행한 삶을 살았던 수많은 예술가들은 아름다운 선과 색채로 불행까지도 승화시켰다. 미술을 이해하는 것은 우리의 삶을 더 잘 이해하는 길이다.

‘올랭피아’는 미술 역사상 가장 큰 스캔들을 일으킨 작품 중 하나다. 현실을 기반으로 여성의 정체성을 당당하게 끌어냈기 때문이다. 마네는 누구의 영향도 받지 않고 오직 자신만의 올랭피아를 창조했다. 신화 속의 비너스가 아니라 현실의 코르티잔(고급 매춘부)으로, 구시대의 낡은 관습과 인식을 과감하게 깨부수는 도발적인 여인으로 만들었다. 올랭피아는 인상주의의 불꽃을 점화시킨 새로운 비너스의 등장이었다. 이는 음지에서 열정을 삭였던 블루스타킹이 세상 속으로 당당하게 걸어 나온 것이다.

순종과 복종을 내면화한 사람들은 자존감이 부족하며 강한 사람에게 보상받고 의존하고자 하기 때문에 더욱 나약해진다. (중략) 복종과 순종의 내면화가 고착돼 오랫동안 우울과 고립감을 느낄 경우 정서가 불안해진다. (중략) 앤서니 프레드릭 샌디스가 그린 ‘메데이아’의 여인을 보라. 분노에 찬 눈빛, 정신이 빠져나간 듯 초점을 잃은 눈동자, 두 손은 터지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자신의 가슴을 쥐어뜯고 있다. (중략) 메데이아는 왜 이렇게 분노한 것일까? (중략) 메데이아는 사랑하는 남자 아이손을 위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희생했다. 아이손이 바람을 피운다는 생각에 불안해하던 그녀는 그 대상이 글라우케인 것을 알고 배신감과 분노에 휩싸인다.

이처럼 저자는 그림에 녹여든 이야기를 통해 우리 인생과 잘 접목해 설명한다. 삶의 무게가 부쩍 무겁게 느껴지고 행복이 멀리 있는 것 같은가? 지금껏 열심히 살아온 인생이 전부 다 내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가? 그림에는 우리의 상처 입은 영혼을 어루만지고 다시 일어서게 해주는 힘이 있다. 삶의 질곡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예술혼을 불태웠던 예술가의 삶이 독자들을 위로할 것이다. 사랑과 죽음, 행복 때문에 흔들리고 때론 자아를 잃고 휘청거리는 이들을 위한 힐링 여행으로의 초대! 그림은 영혼을 어루만지는 위로이자 다시 살아갈 수 있도록 다독이는 손길이다.

유혜선 지음 | 피톤치드

권경희 기자  editor@fe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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