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中 반도체 패권경쟁 소용돌이 휩싸인 한국...'K반도체' 운명 최대위기
美·中 반도체 패권경쟁 소용돌이 휩싸인 한국...'K반도체' 운명 최대위기
  • 권경희 기자
  • 승인 2021.04.11 11: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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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악관 '반도체 서밋'에 삼성전자 포함…투자 압박↑
중국도 "한국과 함께하길 희망"…靑, 15일 대책회의
미국 워싱턴 백악관 루즈벨트룸에서 열린 반도체 공급망 복원에 관한 최고경영자(CEO) 화상 회의에 참석해 실리콘 웨이퍼를 들고 있다(사진=AP뉴시스)

 

[금융경제신문=권경희 기자] 세계시장에서 반도체를 둘러싼 품귀난 현상이 심해지는 가운데 바이든 행정부가 관련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삼성전자를 포함한 반도체 및 완성차 제조업체 등을 백악관으로 불러들였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반도체 품귀 현상을 국가적 위기로 규정하는 한편 한 손에 웨이퍼를 들어 보이며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 사실상 선전포고를 했다. 반도체 칩을 미국 내에서 대거 생산해 세계 반도체 시장을 다시 제패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초(超)격차 기술력과 생산 능력(수율)의 우위를 바탕으로 두 차례의 치킨게임에서 살아남은 한국 반도체 업계는 사상 초유의 위기에 봉착했다. 한국 반도체 산업이 ‘미·중 힘겨루기’ 소용돌이에 휩싸인 형국이기 때문이다. 우리 경제의 근간인 반도체 산업의 생존 전략 자체를 전면 재검토할 시점이라는 진단이 나온다.

韓, 초유의 경영 불확실성 직면

미국의 조 바이든 대통령은 한국시간으로 13일 새벽, 인텔, 삼성전자, TSMC 등 19개 주요 반도체 기업 CEO들을 화상회의에 초대해 미국의 반도체 공급망 구축을 위한 강력한 압박 메시지를 전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반도체를 ‘국가 인프라’로 규정하고 “우리는 다시 세계를 주도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중국 공산당이 반도체 공급망을 재편하고 지배하려는 공격적인 계획을 갖고 있다’는 미 상하원 의원들의 서한을 공개하며 미국 내에서의 공격적 투자를 천명했다. 삼성전자를 포함한 글로벌 반도체 기업 최고경영자(CEO)들에게는 “미국의 경쟁력은 여러분이 어디에 투자할지에 달려 있다”며 투자를 압박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중국을 비롯해 미국에 대해 적대적인 국가들의 대응을 호소하거나 기다릴 여유가 없다”라면서 “현재와 같은 반도체 수급 불균형의 방지를 위해 미국 정부는 적극적으로 인프라 투자에 나설 것”이라고 강조했다.

현재 미국은 중국이 무역과 군사, 경제 등에서 무서운 패권경쟁을 펼치며 치열한 대립구도를 보이고 있는 한편 글로벌 원자재 공급망에서 미국이 중국을 배제하려는 시도까지 나서고 있다. 미국은 반도체 장비에 대한 수출규제까지 강화해 중국 반도체 굴기를 견제하려는 분위기이다. 중국을 국가안보위협으로 규정하고 강하게 압박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이 반도체 자국 생산에 속도를 내는 한편 반도체 품귀난 대책을 수립하며 중국을 압박한다면, 두 나라 모두와 손잡고 있는 삼성전자 입장에서는 상황이 복잡해질 수 있다. 충돌이 심해지는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우리나라는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미국 정부는 반도체 제조에 56조원 투자를 발표하고 반도체 인프라 투자로 미국 내에 19개 반도체 공장을 짓고 현재 12%인 미국의 반도체 생산 점유율을 24%로 끌어올릴 방침이다. 동시에 극자외선(EUV) 노광 장비 등 미세 공정을 위한 핵심 장비의 수출을 차단하며 중국의 ‘반도체 굴기’를 고사시킬 계획이다. 중국은 이에 맞서 오는 2025년까지 170조원 규모의 투자를 추진하는 반도체 내재화 전략에 착수했다.

이에 따라 세계 시장에서 기술 우위를 점하며 반도체 패권을 장악하고 있는 우리 반도체 기업들은 초유의 경영 불확실성에 직면하게 됐다. 특히 미국 메모리 반도체 업체인 마이크론과 웨스턴디지털(WD)이 일본 기옥시아(옛 도시바메모리) 인수까지 검토하면서 우리가 압도적 초격차를 유지해온 메모리 시장까지 따라잡힐 수 있다는 위협이 커지고 있다.

잘 짜인 각본, 인텔 차량용 반도체 생산 화답

인텔은 화상회의가 끝나자마자 향후 6~9개월 이내에 차량용 반도체를 생산하겠다고 발표했다. 마치 잘 짜인 각본 같았다. 사실 이건 불가능하다. 반도체 공장을 짓는데 만 최소 2년 걸리기 때문이다. 인텔은 미리 준비를 했다는 의미이다.

인텔은 1월에 CPU를 외부에 위탁 생산하겠다고 발표했고 3월에는 파운드리 사업에 진출하겠다고 선언했다. 이제 차량용 반도체를 생산하다고 한다. 인텔이 차량용 반도체를 생산한다면 이는 파운드리(위탁 생산)를 의미한다. 자체 설계 역량이 없기 때문이다. 인텔이 지난달 200억달러를 투자해 파운드리 공장을 건설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새로운 공장을 건설하려면 최소 2년이 걸린다. 따라서 6개월 후에 차량용 반도체를 생산하려면 기존 시설을 활용하는 수밖에 없다. 그럼 어디서 생산한다는 것일까. 앞서 언급했듯 CPU를 위탁 생산하면 그 자리가 남기에 CPU 생산하던 곳에서 차량용 반도체를 만들 것으로 예상된다.

문제는 이 물량이 결국은 삼성전자가 반도체 파운드리에서 추격해야 하는 대상으로 꼽히는 대만 TSMC 물량이 될 것이라는 점에 있다. 이렇게 되면 승자 독식의 시장 구조가 굳어져 삼성전자의 TSMC 추격은 더욱 늦어질 수밖에 없다.

다른 미국 기업들도 바이든 행정부의 기조에 적극적으로 발을 맞추는 모습이다. 미국의 마이크론과 웨스턴디지털은 각각 일본에 거점을 둔 낸드플래시 주요 기업인 기옥시아를 인수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기옥시아 인수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는 것이 업계의 중론이지만 실현될 경우 글로벌 낸드플래시 시장 점유율 34%의 삼성전자와 비슷한 수준의 공룡 기업이 탄생할 수 있다. 우리 업체들이 그나마 독보적 경쟁력을 갖추고 있는 메모리 반도체 시장까지 미국 기업의 사정권에 들 수 있는 셈이다.

반도체 ‘게임의 룰’ 완전 바뀌는 위기직면

이처럼 미국은 반도체 패권 장악을 위해 글로벌 기업들을 상대로 ‘미국으로 헤쳐 모여’를 외치고 나섰다. 특히 반도체 설계와 생산 장비 분야에서 독보적인 미국은 연방정부 주도로 입안한 ‘미국을 위한 반도체(CHIPS for America)’ 법안 등을 앞세워 한국 반도체 기업들이 주도하는 업계의 판을 뒤흔들어놓고 있다.

반도체 업계에서는 ‘게임의 룰’이 완전히 바뀌는 새로운 위기인 만큼 정부가 나서 설비투자 촉진책을 내놓고 반도체 핵심 장비·인력 등을 대대적으로 육성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새로운 기술에 대한 국가 연구개발(R&D) 예산은 대기업이라도 과감히 지원하고 반도체 화학물 등에 대한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잇따르고 있다.

미국반도체산업협회(SIA)는 최근 발간한 보고서에서 각 지역으로 세분화된 반도체 공급망을 분석하며 “반도체 코어 지적재산권(IP)이나 로직 칩 분야의 R&D, 장비 등 미국이 유리한 기술 분야 고도화에 힘써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반도체의 패권을 되찾는 과정에서 미국이 IP 보호와 무역통제로 주도권을 쥐고 가겠다는 전략이다. SIA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반도체 공급망 전략 수립에 막강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단체다.

박재근 한국반도체디스플레이기술학회 회장은 이에 대해 “백악관 회의를 개최한 미국은 궁극적으로는 중국과의 기술 패권 전쟁에서 주도권을 가져오려는 목적”이라며 “칩을 설계할 수 있지만 제조는 대만·한국에 의존해야 하는 미국의 처지, 그리고 통신 첨단 분야에서 핵심 부품인 칩이 국가 안보와도 직결된다는 점 때문에 조 바이든 행정부가 더욱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이번 회의를 상무부가 아닌 안보보좌관이 주최했다는 것은 반도체 품귀 문제를 미·중 무역분쟁과 관련한 안보 차원에서 접근하겠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SIA 보고서에 비춰보면 앞으로 바이든 행정부는 전 세계시장의 41%를 점유하고 있는 반도체 장비와 74%의 점유율을 자랑하는 반도체 코어 IP, 연산을 수행하는 로직 칩을 강력하게 보호하는 조치를 취할 가능성이 높다. 반도체 코어 IP는 반도체 집적회로의 레이아웃 설계 등에 연계된 것으로 생산 과정에서 없어서는 안 될 핵심 요소다. 동시에 미국 정부는 자국이 상대적으로 열세에 있는 메모리 반도체나 디스플레이구동칩(DDI), 패키징을 비롯한 반도체 후공정에 투자를 집중할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전자 울며 겨자 먹기식 증설 나서나

삼성전자의 고민이 많아질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삼성은 미국 오스틴에 공장이 있다. 이를 차량용 반도체 생산으로 활용하는 정도로 바이든 정부에 화답할 수는 있다. 그러나 이미 수주한 물량이 있기 때문에 즉시 차량용 반도체로 전환 생산하는 것은 어렵다. 결국, 삼성전자가 바이든의 요구에 화답하는 길은 신규 공장을 건설하는 것이다. 글로벌 생산기지 운용 관점에서 규모와 용도 등을 결정해야 하기 때문에 고민이 될 수밖에 없다.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메모리 공장도 증설해야 하고 퀄컴, 인텔 등을 겨냥한 최첨단 파운드리 공장도 지어야 하는데, 시장 규모가 크지도 않고 쟁쟁한 경쟁자들이 있는 차량용 반도체를 위한 저사양 파운드리 공장을 건설하는 것은 효율적인 투자가 될 수 없다. 굳이 차량용 반도체가 아니라 하더라도 한국산 반도체 수요의 70%가 발생하는 중국(홍콩 포함)을 옆에 두고 미국에 대규모 공장을 짓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결정은 아니다.

삼성전자로서는 미국 눈치로 어쩔 수 없이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진 20조원 투자 규모의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 공장 증설에 더해 이곳을 차량용 반도체 생산 기지로 구축하는 방법이 고개를 들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참에 삼성전자가 미국 정부의 든든한 후원을 등에 업고 세제 혜택 등의 구체적인 이득까지 챙기며 화끈하게 바이든 대통령 요구에 화답하는 방법을 거론한다.

그러나 문제는 화웨이가 지속적으로 삼성전자를 간접적으로 지칭하며 글로벌 반도체 공급 사슬을 회복해야 한다고 손짓하는 점에 있다. 앞서 미국 CNBC 방송에 따르면 에릭 쉬 화웨이 순환회장은 “미국이 중국 기업에 부과한 규제 때문에 전 세계 반도체 산업이 타격을 받고 있다”며 “미국의 제재로 전 세계 반도체 산업에 형성됐던 신뢰가 파괴됐다”고 비판했다.

뒤이어 화웨이의 칼 송 글로벌 대외협력 및 커뮤니케이션 사장도 “한국, 일본, 유럽 등 반도체 선진국과 다시 글로벌 공급 사슬을 형성하길 원한다”면서 “화웨이는 한국에서 여전히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포함해 여러 기업과 협력 중이고 한국 정부의 디지털 뉴딜 정책에도 기여하겠다”고 제시했다.

반도체가 강 건너 불이 아닌 배터리

삼성전자의 고민은 곧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이노베이션 등 배터리 3사의 고민이기도 하다. 바이든은 지난 2월 배터리와 반도체 칩, 의약품, 희토류 등 4개 분야에 글로벌 공급망을 점검하라는 행정명령에 서명한 바 있다. 해당 제품들의 해외 의존도를 낮추고 미국 내 생산을 촉진하기 위한 목적이다. 국내 배터리 3사는 올해 새롭게 사업 계획을 수정하며 미국 내 공장 증설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런데 문제는 향후 배터리 수요가 가장 증가할 지역은 미국이 아니라 유럽이라는 것이다. 글로벌 배터리 공장 증설 계획을 보면 유럽 지역이 압도적으로 많다. 심지어 미국 기업인 테슬라도 유럽에 배터리 공장을 건설할 예정이다. 미국에서 생산한 배터리를 유럽으로 보내야 하는 상황이다.

그러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 미국은 전형적인 당근과 채찍 정책을 구사할 가능성이 높다. 주정부는 일자리 창출을 위해 세금 감면, 토지 무상 제공, 전기와 수도 가격 인하 등을 제시하며 반도체, 배터리 기업들을 유치하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중앙 정부는 원산지 인정, 관세, ESG 등 다양한 무역/비무역 장벽을 이용해 미국 내 생산을 압박할 것이다. 그런데 한국 기업들은 중국을 신경쓰지 않을 수가 없다. 반도체 산업이 중국에 대한 수요 의존도가 높다면 배터리 산업은 소재의 중국 의존도가 매우 높다. 양극재 66%, 음극재 74%, 전해약 70%, 분리막 57%를 중국이 생산하고 있다. 만약 중국이 미국에 있는 배터리 공장에 납품을 중단하면 무슨 일이 발생할까. 중국 배터리 업체들과의 경쟁에서 밀려날 수 밖에 없다. 과연 미국에 어느 정도 투자를 하는 것이 좋을까. 철저하게 비즈니스 관점에서 결정을 내려야 한다. 왜 SK하이닉스가 유진 공장을 처분했고 삼성전자는 그동안 오스틴 공장에 추가 투자를 하지 않았을까. 미국의 공장은 생산성과 경제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국 내 수요로 100% 가동률을 유지할 수 있는 최소한의 투자가 적당하다.

중국 정부는 자국 반도체 산업 육성을 위해 1250억 달러(140조원)를 투자 계획으로 갖고 있다.

류영호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중국이 대만에 위협을 가하는 상황에서 미국은 대만(TSMC)에 대한 의존은 위험하다고 언급한 바 있다”며 “현재 TSMC 물량이 대부분 대만에서 생산된다는 점과 주요 고객사들이 대부분 미국 업체라는 것을 고려해 TSMC로서는 미국 내 투자를 공격적으로 진행할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이를 삼성전자에 대입하면 당장은 미국 정부 요구에 화답하지 않고는 뾰족한 수가 없는 셈이다. 그러나 삼성전자 시각에서 보면 전 세계 반도체 산업군을 좌지우지하는 미국 못지않게 화웨이를 포함한 중국 시장도 무시할 수 없는 곳이다.

삼성전자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에서 올린 반도체 매출은 31조원으로 전체 반도체 매출 103조원 가운데 32%에 가깝다.

상하이삼성반도체와 삼성차이나반도체 2곳의 법인을 운영하며 주요 고객사로는 화웨이도 빼놓을 수 없다. 재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중국 시안 2공장 증설에 약 17조원을 투자했으며 올해 말 가동을 목표로 현재는 장비 설치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권경희 기자  editor@fe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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