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품숙지의무' 도입으로 인력배치 고민
금융상품 나올 때 마다 은행원들 시험 치러야 할수도
불완전판매 논란 피하기 위해 전 과정 녹음·녹화 방안도 나와

[FE금융경제신문= 정성화 기자] 지난해 은행권을 중심으로 해외 금리연계형 파생연계펀드(DLF) 사태가 터지면서 금융회사의 소비자 보호 부실 문제가 도마 위에 올랐고 금융소비자의 권리 보호 차원에서 지난 2011년 첫 발의 된 이후 9년 동안 잠자던 '금융소비자 보호에 관한 법률안(금소법)'이 결국 국회 본회의 문턱을 넘었다. 금소법은 시행령 입법예고 기간을 거쳐 내년 3월 본격 시행을 앞두고 있다.
금소법의 원래 취지는 소비자가 금융회사와 대등하게 권리를 주장하고 보호받도록 하는 데 있다. DLF사태에서 보듯 상품가입자들이 상당수가 고위험 펀드에 가입해 보지 않았거나 복잡한 금융상품에 대한 이해도가 낮은 노년층이었고 구조적으로 투자자에게 불리한 상품이라는 지적이 나오자 금융사와 소비자간의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겠다는 목적이다.
그러나 자칫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 잡으려다 금융산업 전체를 위축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있는 것도 사실이다. 특히 은행업계는 "어떤 사람이 어떤 상품을 어떻게 팔아야 문제가 안 생기는 것"이냐는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금융회사 입장에서 금소법은 자본시장법 등 개별 금융업법에서 일부 금융상품에 한정해 적용되던 ‘6대 판매규제’를 원칙적으로 모든 금융상품에 적용하고 이를 어길 시 위반행위 관련 수입의 최대 50%까지 과징금이 부과되는 등 강한 제재를 받게 되는 것이 핵심이다.
은행 입장에서는 1000억원 어치의 투자상품을 팔았는데 불완전판매 사고가 터져 책임이 입증되면 경우에 따라 최대 500억원의 과징금을 물게 될 수 도 있는 것이다. 통상적으로 은행이 상품을 팔아 가져가는 판매수수료가 1~2%인 점을 고려하면 최대 20억의 수입을 위해서 500억원의 리스크를 떠안아야 하는 셈이다. 거래규모가 클수록 문제가 생기면 물어줘야하는 금액이 커지는 것도 부담이다.
모든 금융상품 판매 시 적용되는 '6대 판매규제' 원칙은 ▲적합성 ▲적정성 ▲설명의무 ▲불공정영업행위 금지 ▲부당권유금지 ▲광고규제 등인데 은행권은 6대 판매규제 중 '설명의무'에 가장 난색을 표하고 있다.
금소법 시행령에 따르면 은행에서 펀드 등을 판매할 때 상품을 설계한 자산운용사(제조사) 아닌 은행(판매사)이 상품설명서를 작성해야 하고 예금상품을 제외한 금융상품 권유시 소비자에게 핵심설명서를 제공해야할 의무가 생긴다. 또한 판매업자의 '상품숙지의무(Know your product)'가 도입돼 판매하는 상품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사람이 상품을 권유하는 행위가 금지된다.
금소법 적용 전에는 자산운용사가 만든 펀드상품을 은행이 판매해도 자산운용사가 알려준 설명만 간단하게 해도 큰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설명의무의 도입으로 은행들은 고객에게 상품 설명서를 직접 작성해야 하고 고객에게 알기 쉽운 표현으로 효과적으로 상품 내용을 전달해야 업무 혼란을 줄이고 상품 설명의무 위반 논란을 피할 수 있게 됐다.
시중은행들은 금소법 시행을 앞두고 상품설명서 및 핵심설명서 점검에 공을 들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투자 상품설명서가 고객의 눈높이에 맞춰 작성이 됐는지 등을 점검하고 있다"며 "쉬운 표현과 간결한 그래픽을 사용해 좀 더 쉽게 설명하고 만약 어려운 용어가 있더라도 고객이 손쉽게 뜻을 찾아보고 구조를 이해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방법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상품숙지의무' 또한 부담이다. 상품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사람이 상품을 권유해서는 안된다는 것인데 은행에서 판매되는 수많은 상품에 대한 판매인력 배치에 대한 고민이 큰 상황이다. 이로 인해 은행원들이 금융상품이 나올 때마다 시험을 치러야할 수도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일각에서는 은행에게 지워진 설명의무에 대한 모호성이 너무 크다는 지적도 있다. 금소법에서는 새로운 금융소비자의 권리로 모든 금융상품에 청약철회권과 위법계약해지권이 생겨난다. 금융소비자는 대출(14일)이나 보장성 보험(15일)은 물론 펀드 같은 투자상품도 소비자 마음이 바뀌면 일주일 내에 청약을 철회할 수 있게 되고 불완전판매를 했거나 부당하게 권유했을 경우, 5년 안에 해지할 수 있는 위법계약해지권도 원칙적으로 모든 금융상품에 적용된다.
설명의무에 대한 기준의 모호성이 클 수록 소비자와 분쟁 발생시 은행에 대한 책임소재가 커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은행의 부담은 더욱 커질 수 밖에 없다. 금융소비자 개인간의 금융상품 이해도가 상이하기 때문에 규정이 모호할 수록 이를 객관적으로 입증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이에 은행들은 금융상품 불완전 판매와 관련한 분쟁을 방지하기 아예 은행 영엽점 오프라인 창구에 모든 상담 내용을 녹음·녹화하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 중에 있다. 금소법으로 인해 불완전판매의 입증책임이 금융사로 상당수 전가된 만큼 새로운 인프라 구축으로 큰 비용이 들더라도 최대한 논란을 피하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또 다른 시중은행 관계자는 "설명의무를 잘 이행하기 위해 여러 방안을 논의 테의블 위에 올려 놓고 고심하고 있다"며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은행이 고객에게 설명을 충분히 제공했다는 수단으로 전 과정 녹취 방안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정성화 기자 jsh1220@fe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