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 완화하자 날개 돋친 듯 몸집 키운 '한국형 헤지펀드'
금융당국, 사모펀드 향해 칼 끝 겨눠

[편집자주] 21대 총선이 여당의 압승으로 끝났다. 코로나19 사태 진행 상황과 맞물려 막강한 여대야소로 출범하는 국회의 금융정책에도 많은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에 본지는 총선결과를 토대로 각 금융권 고민과 현안을 3주에 걸쳐 살펴본다.
총선 전 여당은 기존 모험자본이 부동산 담보대출로 쏠려 있는 것을 개선하고, 동산·기술금융 중심 벤처 대출로 시장을 재편할 것이라고 공언한 바 있다. 벤처 기업 육성은 물론 기술 혁신 기업에 대한 자본 조달 방안을 설정하는 등 모험자본에 대한 활성화가 이뤄질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소기업에 대한 투자? ‘부동산 법인’으로 쏠리는 자금
모험자본(VC·Venture Capital)은 증권업계의 화두다. 성장 여력이 있지만 자금 여력이 충분치 않은 소기업에 대해 유동성을 공급하자는 취지에서 활성화된 것이기 때문이다. 대기업은 자금 조달이 상대적으로 수월한 편이지만, 중소기업은 잠재력을 보고 투자를 받기 때문에 벤처 캐피털의 도움이 없으면 성장 여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모험자본의 투자에 대한 시선은 엇갈린다. 소기업 지원이 아닌, 부동산 법인과 특수목적법인(SPC)로 쏠려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 부실기업에 대한 지원을 옹호하는 수단으로 변질되면서 이를 둘러싼 논쟁은 현재진행형이다.
◇규제 완화 부작용 발생 ... 소비자 보호 미흡
지난 2011년 12월 정부는 모험자본 활성화 움직임을 지원하며 ‘한국형 헤지펀드’를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이로써 주식·채권·파생상품 등 다양한 자산에 투자해 시황에 관계없이 절대 수익을 추구하는 데 제약이 없어졌다. 기존 사모펀드보다 운용 관련 규제를 완화한 것이다.
2015년 말 기준 헤지펀드 설정액은 3조4000억원 규모였다. 3년 후 2018년 설정액은 24조원을 상회할 정도로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규제가 완화됐던 짧은 기간 동안 8배나 몸집을 불린 셈이다. 이는 2015년 10월 금융당국이 자산운용사 설립요건을 인가제에서 등록제로 문턱을 낮추고, 최소 출자금액 한도를 500만원으로 규정하면서 예견된 결과였다.
헤지펀드의 고속성장은 지속되는 듯 했지만 영광은 오래가지 않았다. 2019년부터 완화에 따른 문제가 불거졌기 때문이다. 2019년 10월 9일 국내 헤지펀드 1위 업체인 라임자산운용이 펀드 환매를 중단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일부 증권사와 은행에서 플루토·테티스·무역금융펀드 등 4개의 모(母)펀드를 기초로 하는 자(子)펀드 173개를 환매 중단 하면서 고객 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이 과정에서 이른바 ‘레버리지’를 이용해 펀드 자금을 증폭시키는 TRS(Total Return Swap·총수익스와프) 기법이 사용됐다. 이 때문에 증권사로부터 빌린 돈을 선상환해야 하는 의무가 생겼다. 고객은 손실분은 물론 원금도 찾지 못하는 상황에 처하게 됐다.
2020년 금융당국은 그 동안의 규제 완화 기조를 철회하고, 사모펀드에 대한 규제를 적극적으로 검토하기 시작했다. DLF 사태와 라임자산운용의 환매 중단 사태(라임 사태)를 통해 자산운용사와 증권사 및 금융사 전반에서 소비자 보호에 미흡했다는 지적이 연이어 나왔기 때문이다. 2020년은 무분별했던 사모펀드에 규제를 거는 한 해가 된 셈이다.
모험자본은 상대적으로 투자 위험도가 높지만 일반적인 수준보다 수익성이 높은 사업을 시도하는 데 필요한 자금을 말한다. 운용사가 증권사가 모집한 자금을 굴리는 데에는 증권사의 고객의 투자금이 이용된다. 이렇듯 모험자본의 운용과 고객의 투자금은 불가분의 관계인 셈이다.
하지만 2019년 DLF 사태와 라임 사태에서 보듯 고객을 위한 소비자 보호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상대적으로 높은 수익률을 보장하려면 높은 위험을 감수할 수밖에 없지만, ‘고위험’은 생략하고 수익률만 강조했다는 증언이 나오면서다. 제로금리 시대로 갈음되는 저금리 환경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수익을 거둘 수 있다는 ‘미끼식 영업’에 제동이 걸리게 된 것이다.
본래는 소기업에 적절한 자본이 공급될 수 있도록 하는 취지로 활성화됐던 모험자본이 사실상 부동산 PF를 위한 자금으로 흘러들어가는 양상이 포착되면서 모험자본은 원 취지와 동 떨어지게 됐다는 비판을 받았다.

◇금융당국, 규제 강화 흐름으로 전환
이에 따라 지난 1월 금융당국은 증권사 IB(투자은행) 대출 대상에서 부동산 개발 사업 관련 법인을 제외하는 방안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혁신기업 발굴과 모험자본 활성화 차원에서 인가를 내준 증권사 IB가 부동산 법인 투자로 이익을 내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인식 아래에서 결정된 것이다.
지난 1월 7일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금융투자업 주요 현안 논의를 위한 CEO 간담회’를 통해 "IB의 신용공여(대출) 대상으로 규정된 중소기업의 범위에서 특수목적회사(SPC)와 부동산 관련 법인을 제외하는 방안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후 금융당국은 지난 4월 27일 ‘사모펀드 현황평가 및 제도개선 방안’의 최종안을 확정했다. 모험자본의 공급 등 순기능을 위한 운용 자율성을 지속적으로 보장하는 한편, 투자자보호와 시스템리스크 방지를 위해 시장규율을 확립하고 필요 최소한의 규제를 선별적으로 도입하는 것을 기본원칙으로 삼겠다고 밝혔다.
안다정 기자 yieldabc@fe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