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헌의 아집? ... 키코 배상에 괴로운 은행들
윤석헌의 아집? ... 키코 배상에 괴로운 은행들
  • 정성화 기자
  • 승인 2020.03.11 15: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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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말 금감원 분조위 6개 은행에 키코 피해기업 4곳 총 255억 배상 결정
은행들 법적강제성 없는 분쟁조정안에 대해 배임우려
우리은행은 수용, 씨티·기업은 거부, 신한·하나·대구 결론 못내려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이 지난해 10월 국회 정무위원회의 금융감독원 국정감사에 참석해 의원들의 질의에 답을 하고 있다.(사진=뉴시스)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이 지난해 10월 국회 정무위원회의 금융감독원 국정감사에 참석해 의원들의 질의에 답을 하고 있다.(사진=뉴시스)

[FE금융경제신문= 정성화 기자] 외환파생상품 키코(KIKO)의 배상 문제가 결론을 내지 못한채, 안개 속에 빠졌다. 은행들이 잇따라 분쟁조정안 수용을 거부하거나, 수용 결정을 연장하면서 사실상 거부 분위기로 가닥이 잡힌 것 아니냐는 조심스런 관측도 나오고 있다.
 
11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감독원 금융분쟁조정위원회(분조위)의 키코 배상 조정안을 수용한 은행은 우리은행 한 곳뿐이고, 나머지 은행들은 조정안을 거부하거나, 결정을 미뤘다. 앞서 지난해 말 금감원 분조위는 신한·우리·하나·대구·씨티 등 6개 은행에게 키코 피해기업 4곳에 총 255억을 배상할 것을 결정했다.

키코는 환율이 일정 범위 내에서 변동하면 수출기업들이 약정된 환율에 외화를 매도할수 있는 환위험 헤지 수단이다. 다만, 환율이 일정범위를 벗어나게 되면 수출기업들은 큰 손실을 입도록 설계됐다. 즉, 수출기업이 일정범위 내에서만 환율이 변동한다면 환율변화에 대한 비용을 줄이거나 고정시킬수 있으나, 범위를 벗어난 환율변동은 오히려 피해를 입는 것이다.

지난 2008년 금융위기때 환율이 급등하면서 키코 가입 기업들은 큰 손실을 보게 됐다. 이 때문에 당시 환율 급등으로 피해를 입은 기업들은 키코 상품의 불공정성과 불완전판매를 지적하며 이를 판매한 은행들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013년 키코 가입 기업들이 은행들을 상대로 진행한 민사소송에서 키코 계약자체의 불공정성 및 사기성은 없다고 은행 손을 들어줬다. 다만 불완전판매 여부에 대해서는 기업 및 사례별로 일부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 10년도 더 지난일인데 왜 지금?

키코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와 정치권 등에서 지속적으로 피해구제를 요구하는 목소리는 지속적으로 있었지만 키코 배상 문제를 수면 위로 끌어올린 인물은 바로 윤석헌 금감원장이다. 윤 원장은 학자 시절부터 키코 상품의 문제점을 지속적으로 제기하면서 이 문제에 관해 일관적인 입장을 내비친 것으로 유명하다.

지난해 10월 국회 정무위 국정감사에서 윤 원장은 대규모 원금손실 사태를 초래한 해외금리연계 파생결합펀드(DLF)에 대해 "금융당국이 (과거에) 키코를 적절히 처리하지 못하고 넘어간 것이 이번 DLF 사태의 원인"이라고 지적했었다. 그의 키코 사태에 대한 기본 인식을 알수 있는 대목이다.

지난 2018년 7월 윤석헌 금감원장이 취임하면서 키코 사건 재조사가 이뤄졌고, 키코 피해 기업 4개사가 분쟁조정을 신청하면서, 키코 사태 발생 11년 만인 지난해 12월 분조위는 4개 기업에 대해 은행이 손실액의 15~41%를 배상하도록 하는 결정을 내렸다.

배상액은 은행별로는 신한은행 150억원, 우리은행 42억원, 산업은행 28억원, 하나은행 18억원, 대구은행 11억원, 씨티은행 6억원이다. 분조위는 일부 피해기업에 대한 배상을 시작하면서, 나머지 피해기업도 자율조정(합의권고) 방식으로 분쟁조정을 추진하겠다는 계획이다.

조붕구 키코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 위원장이 금감원의 키코 분쟁조정신청에 대한 은행의 배상 조정결정을 발표한 지난해 12월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날 키코 공대위는 피해 기업들이 재기할 수 있도록 성의있는 조치를 기대하며 은행이 책임회피를 멈추고 추가 협상에 나서야한다고 촉구했다.(사진=뉴시스)
조붕구 키코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 위원장이 금감원의 키코 분쟁조정신청에 대한 은행의 배상 조정결정을 발표한 지난해 12월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날 키코 공대위는 피해 기업들이 재기할 수 있도록 성의있는 조치를 기대하며 은행이 책임회피를 멈추고 추가 협상에 나서야한다고 촉구했다.(사진=뉴시스)

◆ 난감한 은행들

은행들이 키코 분쟁조정안에 고심을 거듭하는 이유는 배임문제에 휘말릴 수 있어서다. 

이미 지난 2013년 대법원은 키코 사태와 관련해 불공정 계약으로 보기 어렵다는 판결을 내렸고, 더군다나 민법상 손해액 청구권 소멸시효인 10년이 지난 상황에서 이사회가 배상을 의결할 경우 주주이익을 훼손하는 배임에 해당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즉 배상하지 말아야 할 곳에 주주와 고객의 이익을 해쳐가면서 회사 자산을 감소시켰다는 법률적리스크가 발생하는 것이다.

금감원은 대법원이 키코 계약과 관련해서는 불공정성 및 사기성을 부인했으나, 불완전판매에 대해 사례별로 인정한 점과 소멸시효가 완성된 건이라도 당사자의 임의변제가 가능하므로 소비자보호 등을 위해 조정결정을 권고할 수 있다며 은행들을 설득에 나섰지만 은행들은 쉽게 배임 우려를 털어내지 못하고 있다.

실제로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은 모 법무법인의  자문을 통해 금감원이 배상 근거로 삼은 기준인 적합성의 원칙, 설명의무 등에서 사실관계에 대한 법리적 다툼이 있을 수 있고, 은행의 의사결정권자들이 배임 혐의를 받을 수 있다는 결론을 받았다는 전언이다.

◆ 우리銀은 수용, 씨티·기업銀은 거부, 신한·하나·대구銀는 결론 못내

금감원 분조위 결정에 가장 빠르게 응답한 곳은 우리은행이다. 우리은행은 지난달 초 이사회를 열고 분쟁조정안을 수용하기로 의결하고 일성하이스코, 재영솔루텍 등 2곳에 대해 총 42억원을 지급 완료했다.

한때, 우리은행의 빠른 결단에 눈치를 보던 은행들도 동참하지 않겠냐는 관측도 나왔다. 그러나 조정안을 거부하는 은행들이 나왔다. 분조위의 배상 결정은 강제성이 없어 양측이 모두 받아들여야 효력을 갖는다. 

씨티은행은 이사회를 거쳐 배상안을 수용할 수 없다고 금감원에 지난 4일 통보했다. 씨티은행 측은 거부이유로 피해기업인 일성하이스코에 이미 금감원의 배상 권고액인 6억원을 초과하는 부채를 이미 감면해줬기 때문이라고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산업은행도 금감원에 수용불가 입장을 통보했다. 산업은행은 법률자문을 통해 배임리스크를 떨쳐내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산업은행은 키코 분조위가 배상 근거로 삼은 적합성의 원칙, 설명의무 사실관계에 법리적 다툼의 여지가 있다는 입장이다.

현재 신한은행, 하나은행, 대구은행 등은 수용 여부를 고려할 수 있는 기한 연장을 요청한 상태다. 신한은행은 지난 6일 긴급 이사회를 열고 이 문제를 결론 내릴려고 했으나, 이사 전원의 동의를 얻지 못해 이사회를 열지 못했다. 현재는 금감원에 유선으로 키코 배상 수락기간을 연장해 놓은 상태이다. 신한은행의 배상액은 150억원으로 6개 은행 중 가장 크다. 과거 사례를 감안하면 결론을 못내고 있는 신한은행을 포함한 다른 은행들은 몇 주 내에 최종 입장을 정리해 금감원에 전달할 것으로 보인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은행들 입장에서 금감원의 요구를 거절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라며 "하지만 배상안을 받아들일 명분도 없고 법적으로도 지급해야 할 이유가 없는데 배상에 나섰다간 자칫 배임 이슈에 휘말릴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또 "키코는 상품 자체는 문제가 없다는 사법부의 결론이 나온 상태고, 불완전판매가 제기됐지만 이 또한 명확히 밝혀진 것이 없다"면서 "우리은행은 현재 CEO의 연임문제와 DLF사태로 인해 금융당국과 맞서는 모양새를 취하기 어려웠을 것으로 판단되며 정상적으로 의사결정을 한다면 받아들이는 은행은 아마 아무도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성화 기자  jsh1220@fe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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