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지 공간을 찾아내는 것은 예술가의 창조작업과 다를 바 없다.
세상의 모든 여행자는 예술가가 되어야 한다. 미의 창조행위가 예술행위다.
여행정보를 모으고 여행지를 선정하고 여행지로 향하는 그 행위는 예술행위이다.
그 여행을 통해서 인생의 아름다움을 창조하기 때문이다.
‘여행은 미에 대한 창조행위다’라는 명제에 동의하는가?
여행이 미의 창조행위가 아닐 때 우리는 허접하고 시시한 여행에 평생 발목 잡히게 될 것이다.
가끔 떠나는 여행마저 허접으로 점철될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
여행이란 주어진 시간과 공간 속에서 벌어지는 예술행위인 것이다.
밤, 겨울, 산동네, 골목, 갯벌, 서해안, 섬, 암자, 언덕, 정자, 능선, 새벽, 달밤, 클래식, 오지, 시골장, 돌담길, 흙길, 별, 일몰. 위 존재들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모두 그 상대되는 개념에 비해 소외되어 온 존재들이다.
쉬이 선호하지 않는 것들이다.
나는 이들을 한 마디로 ‘끝’이라 부른다.
밤 여행은 낮에 하는 여행에 비해 소외되어 있다. 아니 ‘밤여행’이란 것이 존재하는가 하고 물을 정도다.
겨울여행을 떠나는 이들은 극히 적다. 아무도 찾지 않는 겨울이기에 겨울 나름의 정취가 있다.
산동네는 여행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찾지 않는다. 그러기에 다른 여행을 꿈꾸는 여행자가 가야 할 곳이다.
서해안은 동해안에 비해서 소외되어 있다. 몇 가지 이유로 물이 많지 않다. 물이 맑지 않다는 이유로. 하지만 그렇기에 다르게 느껴지는 풍경이 있다.
섬은 최고의 끝이다. 다만 너무 유명한 섬이 아니라야 진정한 끝이다. 그곳은 단절의 공간이다. 기나긴 바닷길을 지나야만 만나게 되는 격절의 공간이다.
이외에도 끝은 발굴하기에 따라서 무수히 많다. 결국은 자신만의 끝을 발견해 나가야 한다.
여행은 화려함과 중심을 찾아가는 여행이 있고, 이면과 변방을 찾아가는 여행이 있다.
어디를 여행할 것인가에 대한 나의 철학적 배경은 ‘끝’이다.
한 마디로 어디를 가야 여행의 심장 속으로 바로 들어갈 수 있을까?
그래서 생각을 정리해서 표현한 것이 ‘끝’이었다.
‘끝’은 마지막인 동시에 시작을 의미한다. 공간을 의미하면서 또한 시간을 의미한다.
어디에서나 통용되는 ‘어디를 갈 것인가’라는 물음에 답을 하는 여행원리를 발견하고 싶었다.
대중적인 여행정보를 쫓는 일반 여행자들로부터 소외된 공간들을 소외에서 해방시켜주고 싶었다.
몰리는 곳으로만 집중되는 대중성으로는 멋진 여행을 시작할 수 없다.
여행을 떠났어도 참담한 실패가 예정된 여행인 것이다.
실패가 예정된 여행이라니. 나는 그 실패로부터 창조적 여행을 꿈꾸는 이들을 구해내고 싶었다.
끝의 발견은 행복의 발견이고, 세상에 없던 여행의 발견이다. <다음호에 계속>
금융경제 news@fe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