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CEO 등장 기대 박정림 KB증권 부사장 관심 집중

[FE금융경제신문=이도희 기자]KB증권을 이끌어 온 윤경은·전병조 각자 대표이사가 공동 사의를 표명하면서 임원진들도 좌불안석이다. 두 사람이 통합법인 KB증권 출범 전부터 회사를 경영해왔던 만큼 임원진 구성뿐 아니라 조직 곳곳에 손길을 미쳐왔기 때문이다. 하루아침에 울타리를 잃게 된 임원진들은 벌써부터 신임 대표 취임 후에 벌어질 인사태풍을 우려하는 분위기다.
18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금융지주는 오는 19일 계열사대표이사후보추천위원회(대추위)를 연다. KB금융 계열사 CEO 14명 중 연말 임기가 만료되는 인물은 9명이다. 윤경은·전병조 KB증권 사장, 양종희 KB손해보험 사장, 조재민·이현승 KB자산운용 사장, 박지우 KB캐피탈 사장, 정순일 KB부동산신탁 사장, 김해경 KB신용정보 사장, 김기헌 KB데이타시스템 사장 등이다.
◇대추위 D-1 '윤경은·전병조' 사의 표명
이중 윤경은·전병조 사장은 전날 회사측에 함께 사의를 표명했다. 두 사람은 합병 전 현대증권과 KB투자증권을 시작으로 각각 6년과 4년 동안 CEO를 맡아 왔다. 통합 KB증권의 조직이 안정된 만큼 "새로운 도약을 위해 물러나기로 결심했다"는 게 KB증권의 설명이다. 이날 윤 대표는 회사로 출근해 직원들을 만나 "후배들과 경쟁하지 않기 위한 결단"이라며 마지막 인사를 전했다.
두 사람의 사의 소식에 임원들은 벌써부터 술렁이는 분위기다. 이번 결정이 별도의 사전 교감 없이 전격적으로 이뤄진데다 그동안 조직에 미쳤던 두 사람의 영향력을 감안하면 큰 폭의 변화가 불가피하다는 우려에서다. 윤종규 KB금융 회장이 최근 경영진들에게 '젊은 KB'를 강조했다는 점에서 후배들을 위한 용퇴 결정이라는 관측도 나오지만 시기적으로 애매해 석연치 않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KB증권, 윤종규 회장 친정체제 강화되나
대추위 하루 전에 사의를 표명하고 이런 사실이 알려지는 경우는 사례를 찾기 어려운 일이다. 그런 까닭에 KB금융 안팎에서는 여러 가지 관측이 나온다. 일각에서는 세 사람의 그룹 내 위치와 결부해서 보는 시각도 있다. 사의를 표명한 3명의 CEO 모두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의 친위인사로 분류되기 어려운 인물들이라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이번 사장단 인사를 계기로 윤 회장 친정체제가 더욱 공고화될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윤경은 KB증권 사장은 LG선물, 신한금융투자, 솔로몬투자증권을 거쳐 지난 2012년 10월부터 옛 현대증권 사장에 재직했다. 전형적인 증권맨인 윤 사장은 지난 2016년 6월 옛 현대증권이 KB금융지주로 편입되면서 윤 회장과 인연을 맺었다.
전병조 KB증권 사장은 관료 출신이다. 해양수산부, 기획재정부 등을 거쳐 NH투자증권, 대우증권에서 근무하다가 지난 2013년 옛 KB투자증권에 합류했다. 그가 KB투자증권 대표 자리에 오른 시기는 2015년 1월, 통합 KB증권(현대증권+KB투자증권)이 출범한 지난해 1월부터 윤경은 사장과 함께 각자 대표직을 수행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윤경은·전병조·박지우 대표는 계열사 CEO를 역임했지만 윤 회장의 직접 발탁하고 키운 인물은 아니다"라며 "현 부행장, 전무급 인사들은 윤 회장이 뽑은 사람들로 이들을 자회사 대표로 전면에 내세울 경우 윤 회장 친정체제를 강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관측했다.
KB금융 안팎에선 측근 인사들을 전면에 내세우고 조직의 운영방향을 바꾸기 위해 윤 회장이 사전 작업에 들어간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특히 윤 회장의 색깔을 보여주기 적절한 시점이기도 하다. 외풍에 대한 우려가 큰 KB금융의 특성을 고려할 때 윤 회장의 임기가 1년밖에 남지 않는 내년 말에 대규모 교체 인사를 단행하기 어렵다는 이유다.
이 때문에 올해 측근 인사들로 친정체제를 구축하고 조직의 결속력 등을 강화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을 것으로 보인다는 게 KB금융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KB금융 고위 관계자는 "내년 말에 계열사 사장을 바꾸면 (윤 회장의) 임기가 1년밖에 남지 않아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며 "이번에 자신만의 색깔을 낼 수 있는 마지막 기회로 본 것 같다"고 덧붙였다.
◇조직 변화 필요 시점으로 판단한 듯
물론 반론도 있다. 또 다른 금융권 관계자는 "윤경은 사장은 윤 회장이 직접 발탁한 것은 아니지만 나름 대우와 중요성을 인정받았던 CEO"라며 "다만 국민은행 다음으로 큰 KB증권의 실적이 지주의 기대에 못 미치면서 증권사 각자 대표체제의 실효성을 안 좋게 보는 시각이 있었다"고 말했다.
국민은행을 제외하면 최대 계열사인 증권사 CEO의 퇴진이 가시화되면서 KB금융 내에선 세대교체 바람이 거셀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실제로 박지우 사장도 전날 윤종규 KB금융 회장에게 용퇴 의사를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KB금융 고위 관계자는 "대추위에 앞서 계열사 CEO의 입장을 듣기 위해 면담을 진행했다"며 "이 자리에서 (윤 회장에게) 연임 의지를 보인 CEO도 있고 그렇지 않은 CEO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윤 회장이 최근 CEO들과 함께 한 자리에서 '세대교체'를 암시한 것도 이 같은 관측에 무게를 싣는다. 실제로 윤 회장은 경영진들에게 '젊은 KB'를 강조하면서 계열사 CEO 인사에 반영할 수 있다는 뜻을 내비쳐왔다.
금융권에 따르면 윤 회장은 이 자리에서 "실적이 좋은 선배 CEO들이 많다"며 "어떤 결과가 있더라도 KB를 좋은 추억으로 생각해주시길 바란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윤 회장은 "젊은 CEO들이 나올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며 "KB 역시 더욱 젊어져야 한다"고도 말했다.
현재 KB금융 CEO 중 1950년대생은 박지우 사장과 김기헌 KB데이타시스템 사장(1955년생), 정순일 KB부동산신탁 사장(1958년생) 등 세 명이다. 윤 회장은 이미 지난해 최대 계열사인 KB국민은행 CEO로 1961년생인 허인 행장을 발탁하며 CEO 세대교체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1950년대생 CEO들의 퇴진이 가시화되면 윤 회장 취임 후 사실상 가장 큰 폭의 CEO 인사가 될 수도 있다. 윤 회장은 2014년 11월 취임 후 줄곧 ‘조직안정’에 무게를 두고 CEO 인사를 단행해왔다. 회장 연임 후 첫 계열사 CEO 인사였던 지난해 12월에도 KB국민카드(이동철)·KB생명보험(허정수)·KB저축은행(신홍섭) 등 세 곳의 CEO만 교체했다. KB자산운용(이현승)과 KB데이터시스템(김기헌)도 새 CEO로 선임됐지만 각각 각자대표 추가 선임과 공석을 기존 지주사 임원의 겸직으로 채운 것이었다.
◇여성 CEO 박정림 KB증권 부사장 물망
한편 국내 증권업계에 첫 여성 최고경영자(CEO)가 탄생할지도 주목된다. 지난 18일 동반 사의를 표명한 윤경은·전병조 KB증권 사장의 후임으로 박정림 국민은행 WM그룹 부행장 겸 KB증권 WM부문 부사장이 유력한 후보로 물망에 오르면서다. 현재 국내 증권사 중 여성 CEO는 오너가인 대신증권의 이어룡 회장이 유일하고, 전문경영인 중에선 여성이 없다.
다만 윤 회장이 평소 "증권과 자산운용 부문은 시장 전문가에게 맡겨야 한다"는 지론을 펼쳐온 점을 감안할 때 시장 전문가의 깜짝 발탁이 이뤄질 가능성도 있다. 이렇게 되면 WM(자산관리) 분야에서 능력을 인정받은 박 부사장의 경우 KB캐피탈 CEO 선임 가능성이 점쳐진다.
현재 박 부행장은 KB금융지주에서 WM부문장(부사장)도 맡고 있다. 박 부행장은 현재 증권은 물론 은행 등 금융지주 차원의 자산관리(WM)를 총괄하고 있다. 평소 뛰어난 업무처리 능력과 추진력으로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의 신임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졌다. 박 부행장은 KB금융그룹 내에서 현직 부행장 중 재직기간(2014~)도 가장 길다. 박 부행장이 KB증권 사장으로 선임되면 국내 증권사 첫 여성 CEO라는 타이틀을 얻게 된다.
이도희 기자 dohee@fe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