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 눈치보기보다 본연의 역할 수행 절실

(금융경제신문 문혜원 기자)새 정권이 바뀌었어도 금융계의 국감을 통해 밝혀진 사실은 적폐 인사 비리뿐이었다. 국민들은 이에 전 정권과 크게 다를 바 없다는 평가아래 연이은 질타를 받았다. 특히 지난 23일, 24일 국회 정무위원회, 기획재정위원회의 국감을 통해서도 KDB산업은행·IBK기업은행·한국은행·수출입은행 등 국책은행들의 각종 비리 연루 문제도 드러나 뭇매를 맞았다.
◇국책은행 퇴직임원 재취업 낙하산 등 공공성 이미지 훼손
산업은행의 경우 퇴직임원의 재취업 낙하산 문제와 대우조선해양의 지분 보유 등에 관한 내용이 도마위에 올랐다. 지난 9월에는 산업은행에서 최근 5년 동안 퇴직한 고위임원 37명이 모두 산업은행과 관련한 기업 임원으로 다시 취업한 것으로 밝혀져 산업은행의 낙하산 취업관행과 국책은행으로써 공공성 문제가 지적을 받았다.
특히 기획재정위는 한국수출입은행, 한국투자 등에 대한 국정감사를 진행하며, 여신운용의 적법성이나 국책은행의 모피아 문제 등 지적을 제기했다.
기업은행·수출입은행과 함께 대우조선해양과 금호타이어·대우건설·성동조선 등 기업 구조조정 문제가 주요쟁점이 됐다. 대규모 구조조정을 앞두고 있는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과 은성수 수출입은행장의 책임 역할에 대해서도 의원들의 질타를 받았다.
산업은행과 기업은행 국감에 카허 카젬 한국지엠(GM) 사장이 증인으로 출석해 한국지엠 철수설도 도마위에 올랐다.
그간 대우조선의 구조조정은 총 7조1000억원의 혈세를 투입되면서도 '밑 빠진 독에 물붓기'로 상징돼 왔다. 1999년 옛 대우중공업 시절에도 기업 회생 과정에서 2조9000억원이라는 막대한 공적자금이 흘러 들어간 바 있다. 게다가 대우조선의 구조조정이 진행되는 중에도 회사 대주주인 산업은행은 대우조선의 회계 부실을 전혀 인지하지 못해 구조조정을 관장해야 할 정부가 관리 대상의 부실을 가만히 보고만 있다는 지적을 피하지 못했다.
더구나 2015년 4조원 이상의 공적자금을 지원하는 과정에서 청와대와 정부 고위 관료들이 대우조선의 회생 가능성이 희박한 것을 알면서도 밀실회의(서별관 회의)를 통해 혈세로 운영되는 국책은행에 일방적으로 떠넘겼다는 사실에 국민은 분노하기도 했다.
수출입은행의 경우 최근 경영진이 일괄 사퇴를 한 상황에 따라 지난해에 이어 조직의 연속성이 떨어지는 ‘고무줄 조직’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한국은행은 지난 19일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금리인상 가능성을 밝힌 만큼 1400조원에 이르는 가계부채 관리 문제를 두고 의원들의 질의가 이어졌다. 금리인상 방향성에 관한 입장 등도 거론됐다.
◇국책은행 역할 지적…부실 대기업 구조조정 못 지켜
이러한 연이은 국책은행들의 제역할을 못하는 태도에 대해 금융권 전문가 및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기업은행 등 국책은행들이 구조조정 등에 제 역할을 못했다고 공통된 지적을 제기했다.
최근 KDI의 ‘부실 대기업 구조조정에 국책은행이 미치는 영향’이라는 현안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국책은행은 부실기업의 워크아웃 개시 시점을 지체시켰고, 지원을 확대해 금융자원을 비효율적으로 배분했다고 평가했다. 보고서는 “이 같은 결과가 나타난 데에는 국책은행이 부실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경제성 이외의 요인도 감안해야 하는 환경에 처해 있기 때문”이라며 “따라서 국책은행의 역할을 설정함에 있어 기업구조조정 기능이 보다 효과적으로 수행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금융당국에 대해서는 “국책은행이 채권단의 이해상충 문제에서 자유로운 독립된 기업구조조정회사에 부실자산을 매각하도록 해 기업구조조정이 시장에서 진행되도록 유도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김영일 KDI 경제전문위원은 “금융당국은 현재 지나치게 확대돼 있는 국책은행의 금융지원 규모를 점진적으로 축소시킴으로써 금융자원배분의 효율성을 제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제안했다. 이어 “국책은행 역할조정 방안에서 신속한 기업구조조정을 유도하는 정책과 시장실패가 존재하는 중소기업에 대한 정책들은 신속하고 과감하게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연행 금융소비자연맹 대표는 “국책은행이 공공금융기관이라는 명분 아래 임직원들이 공무원처럼 일하고 불리한 일에 대해서는 시급히 해결할 의지를 보이자 않아 이와 같은 비난을 사고 있는 것”이라며 “정권의 코드 맞추기 정책보다는 시장메커니즘에 맞춘 기본적 경제마인드를 가져 금융계 ‘혈맥’과도 같은 충실한 기능을 발휘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뒤늦게 수습 나선 블라인드 채용 확대 방안
이에 따라 금융당국에서는 금감원을 필두로 금융권 전반에 채용과정에서 공정성과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제도 도입을 뒤늦게 서두르고 있다. 한국은행은 이번 신입직원 지원서에서 최종학력, 최종학교명, 전공, 학점, 성별 등 7개 인적사항을 제외하기로 하면서 블라인드 채용방식 적용을 확대했다.
기업은행은 금감원과 마찬가지로 올해부터 블라인드 채용방식을 2차 임원면접까지 전과정으로 확대해 이름이나 최종학교명, 출신 지역을 완전히 가린 채 전체 전형을 진행하고 있다.
산업은행도 입사지원부터 최종면접까지 블라인드 채용방식을 적용하고 있다. 이들 기관은 최종합격자들에게만 졸업·성적증명서를 제출하도록 할 계획이다.
문혜원 기자 ft10@fe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