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적에만 혈안 고객에 제대로된 정보전달 안해 문제 소지

(금융경제신문 문혜원 기자)개인형퇴직연금 IRP가 세액공제와 노후에 연금 전환이라는 상품 본래의 목적과 맞지 않게 은행권에서는 정기예금이라는 식으로 판매하고 있어 문제가 되고 있다.
행원들에게 영업실적 압박만을 강요하는 은행의 조직성 문제라는 것이 일각에서 지적하는 관점이다. 특히 고객에게 꼭 필요한 금융상품 가입을 권유하기 보다 은행측의 마케팅 대상 상품이나 수익성이 좋은 상품 가입에만 몰두해, 고객의 실효성에도 어긋나는 영업행위에 대한 금융당국의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지난 7월 26일 개인형퇴직연금 IRP 가입대상을 확대한다는 정부의 방침이 내려진 후, 한 달이 됐지만, 시행 초기 은행들이 과당 경쟁에 몰입했던 때와는 다르게 잠시 주춤한 분위기다. 하지만 여전히 은행 영업 내부에서는 실적을 올리기 위한 영업 압박이 여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초기와 다른 점이 있다면, 최근에는 정기예금이라는 식으로 일단 고객을 가입부터 시키고 본다는 개념이 깔려 있어 소비자의 실효성에 어긋난다는 지적이 쇄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 시중은행 영업점에서 근무하는 행원 A씨는 “최근에 IRP가 다른 타 은행에 많이 밀리고 있는 상황이라 본부장이 매일 실적을 체크하고 있다”면서 “어떻게 목표 실적 채울지 계획서도 매일 제출하고 있다. 심지어 실적체크도 최근에는 노동조합에 문제 제기가 될까봐 카톡이나 밴드로 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어 “우선 12월 말까지의 목표는 채워야 하니까 정기예금식으로 일단 가입시켰다가 내년 1월에 해지하면 된다는 식으로 고객들에게 유도하고 있다”면서 “은행 측에서는 IRP 계좌에 돈이 들어오니 영업점 입장에서는 손익 보상을 받게 되는 측면이 있다”면서 “이런 식으로 은행 입장에서는 퇴직연금 1등 은행이라는 광고효과를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은행권이 이러한 IRP 실적에 목을 매는 이유로는 단기성 상품에 큰 수익을 기대하지 못한다는 생각에 장기성 고객으로 실적을 이끌고자 하다 보니 영업이 과당 경쟁으로 내몰리고 있다는 것.
조남희 금융소비자원 대표는 “은행영업 실적은 사실 한계가 있다 보니 과도하게 고객 개별 적금 형태의 식으로 유도하고 있다”면서 “적합하지 않은 고객에게 과도하게 권유하는 행태는 영업 수단으로만 보는 상품으로 변질돼 불건전한 영업행태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최근 금융협회 공시자료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43개사의 올해 상반기 금융권 IRP 총 적립금은 13조7107억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서 은행권 IRP 적립금이 8조7261억원으로 가장 높았다. 점유율로만 치면 63.6%로 사실상 3분의 2를 먹고 있는 상황이다.
IRP는 근로자가 이직·퇴직시 받은 급여를 본인 명의 계좌에 적립해 만 55세 이후 연금화 할 수 있는 제도다. 기존에는 1년 이상 근로한 사람만 가입 요건에 충족됐지만, 지난 7월부터 근로 기간이 1년 미만인 사람과 자영업자 등으로 범위가 넓어져 각광받기 시작했다.
IRP시장은 지난해 12조3931억원에 이어 올해는 1조3176억원(10.6%)이 더 오르며 가파른 상승세를 기록했다.
국민은행은 IRP시장에서 올해 상반기에만 적립금 2100억원을 추가하며 2조4000억원으로 전업체 가운데 높은 점유율을 기록했다. 이어서 신한은행 1조9000억원, 우리은행 1조5000억원, 하나은행 1조1600억원으로 IRP시장 2~4위를 점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나머지 시중은행인 기업은행과 농협은행이 각각 7, 8위를 기록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IRP 시장은 대형 시중은행들이 과점하고 있는 상황이다.
점유율은 높지만 수익률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평균 1.45% 수준으로 신한은행이 1.67%로 가장 높았고, 이어 국민은행 1.57%, 농협은행 1.48%, 하나은행 1.44%, 우리은행 1.36%, 기업은행 1.20% 순이다. 인터넷전문은행 케이뱅크의 정기예금 상품 금리가 2.1%인 점을 감안하면 예금보다도 수익성이 떨어지는 셈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새 정부의 이슈가 있는 시장이다 보니 타 은행과의 중복 가입에 대한 우려로 인해 보다 빨리 고객에게 정보를 알리고 선점하고자, 실적독려 차원에서 영업직원들에게 유도하고 있을 뿐, 심한 압박 강요로 유도하지는 않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금융권 일각에서는 “단기상품인 IRP가 새롭게 논의 된(정부) 장기 고객 확보 차원에서도 은행 개별적 입장에서는 묶어둘 수 있는 끈이 되기 때문에 영업을 강화한다는 측면이 있어 내부통제 시스템에 의해 먼저 걸러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금융감독원은 이와 관련 지난해 ISA 때처럼 과당 경쟁으로 인한 불완전판매 문제가 불거지지 않도록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금감원 은행감독국 관계자는 “아직까지는 경쟁이 과열되는 분위기는 아닌 것으로 파악됐다”면서 “올해 실적 결산 시기쯤에 경쟁이 치열해질 가능성도 있다고 보고 집중 모니터링 중”이라고 말했다.
조남희 대표는 “현재 감독당국이 과거 ISA 피해 우려로 인한 상황 대비와 불완전 판매에 대비하고자 감시 체계를 강화 한다고 했지만 경고성에 그치는 것 밖에 안된다”면서 “은행 법인과 직원에 대한 강한 제지, 시장에서 알아서 조정할 수 있도록 하는 대책 등도 함께 마련해야 된다”고 강조했다. 또 “무엇보다 내부 정화 관리가 작동되도록 해야 하는 대책이 강구되도록 해 업계 자체가 스스로 지킬 수 있는 풍토가 마련될 수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문혜원 기자 ft10@fe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