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맘대로 규제 ‘비대면 서비스’ 못해
대주주 전횡 최후 보루 ‘은산분리’ 지켜야
■ 금융경제가 만난 사람/고동원 은행법학회 명예회장

(금융경제신문 박성경 기자)고동원 은행법학회 명예회장은 국내 금융 관련법 수준이 현저히 떨어진다며 일침을 놨다. 불필요한 규제가 많은 것도 문제지만, 미비 조항도 상당해 법보다 행정지도가 더욱 강력한 것이 국내 실정이라는 것이다. 일종의 그림자 규제다. 금융경제는 고 회장을 만나 국내 핀테크 시장 확산에 따른 금융 관련법의 현 위치와 개선 방안에 대해 나눠봤다.
‘비대면 서비스’ 그림자규제 피해
고 회장은 금융업계가 도입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비대면’ 서비스가 그림자 규제의 가장 큰 사례라고 설명했다. 법과 금융당국의 해석 간 차이로 인해 이 같은 서비스가 20여년 동안 시행되지 못했다는 것이 고 회장의 말이다. 사실상 은행법에 ‘비대면’ 금지 조항이 없었음에도 금융 당국의 최초 해석은 ‘NO’, 최근 핀테크가 일반화되고서야 업계의 주장에 못 이겨 유권해석을 바꿨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고 회장은 금융 관련법이나 감독 규정을 재정 혹은 개정할 때, 이해 관계자인 기관들과 업체들의 의견이 충분히 반영될 수 있는 시스템을 제도화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영국이나 호주, 미국의 경우 법을 제정하거나 개정할 때, 사전 공지를 통해 충분히 여론을 확보한다. 무엇보다 결과에 대해 각각의 의견 반영 여부를 명확하게 기재해 웹페이지를 통해 공개한다는 것이 요점이다.
“국내에서는 의견 제출하라고 해도 당국의 눈치를 봐야 하잖아요. 설령 했다고 해도 반영 여부와 근거가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아요. 그러니 대부분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이 반영되지 못하고 입법과정이 형식적이게 되는 겁니다”라고 회장은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인터넷전문은행에 대해서도 얘기했다.
우선 금융당국이 12월부터 비대면 시스템이 가능하도록 규제를 완화했기 때문에, 은행법 내에 인터넷전문은행의 정의를 추가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게 고 회장의 말이다. ‘영업소 없이 전자적인 방법으로 거래하는 은행’이라는 식의 정의가 가능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최소자본금 500억 완화 필요
최소자본금을 낮추는 문제에 대해서도 호의적이었다. 인터넷전문은행이 전국적인 단위로 운영되다 보니 시중은행과 동일한 1000억원을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 일각에서의 주장이지만, 진입규제 완화 차원에서 이를 500억원 규모로 낮춰도 지장이 없다는 것이다. 사실상 설립을 준비하는 단계에서 500억원 보다 훨씬 더 많은 비용이 들어가기 때문에, 특별조항을 통해 500억원으로 최소자본금을 낮추는 것은 규제 완화로서 의미가 더 크다는 게 고 회장의 말이다.
그러나 은산분리에 대해서는 완강했다. 그는 금융당국의 감독만으로는 산업자본이 대주주가 됐을 때 발생할 수 있는 문제들을 완벽하게 방지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동시에 기업들도 경영사정에 따라 자금이 필요할 때는 은행으로부터 대출을 받아야 하는 자금 수요자의 입장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기업은 시장 상황에 따라 재무상황에 어려워지면, 대주주로서의 압력을 행사할 가능성이 큽니다. 대주주의 압력을 거절할 수 있는 은행장이 있을까요. 지나간 여러 사례를 보더라도, 법의 허점을 악용하는 사례가 많기에 감독에만 의존할 수는 없습니다”라며, 고 회장은 상호저축은행 사태와, 동양그룹 사태는 국내 금융 시장이 여전히 불안정함을 방증하는 사례라고 제시했다. 무엇보다도 은행의 공공성과 기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은산분리가 철저하게 유지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덧붙여 금융당국의 은산분리 추진과정 또한 매끄럽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애초부터 은행법 개정과 산업자본의 50% 진출을 전제한 상태에서 인가를 내준 부분 때문이다. 이에 당국의 여론몰이는 주의해야할 점이라며 재차 강조했다.
‘P2P대출’ 신뢰기반 마련 중요
아울러 핀테크 확산으로 많은 논란을 빚고 있는 지급결제시장과 P2P대출과 관련해서도, 결국은 피해사례를 방지할 수 있는 신뢰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특히 P2P의 경우, 일반인 투자자와 차입자을 보호할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중요한데, 이를 위해서는 법적 근거가 명확히 마련돼야 한다는 것이 그의 말이다. 그래야 산업도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
대출자들이 P2P업체에 넘긴 자금을 어떻게 보관하느냐 하는 것도 핵심 사항 중 하나라고 언급했다. 영국의 경우 이를 신탁자산으로 보고, 수탁회사가 자금을 별도 보관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혹시 P2P업체가 부도를 맞아도 자금을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는 장치인 셈이다.
결국 핀테크 거래 활성화는 소비자에게 혜택을 제공하는 것으로 이어진다는 것이 고 회장의 말이다. 핀테크가 국내 시장의 경쟁력을 제고해서 보다 좋은 상품이 만들어질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할 것이기 때문이다. 고 회장은 이를 위해서라도 국내 금융관련법이 조금 더 투명하고 합리적인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며 역설했다.
◇고동원 은행법학회 명예회장 약력
현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사)한국상사판례학회 부회장
(사)한국증권법학회 부회장
금융감독원 금융분쟁조정위원회 위원
금융감독원 금융감독자문위원회 위원
예금보험공사 자문위원회 위원
전 (사)은행법학회 회장
건국대학교 법과대학 조교수
김&장 법률연구소 미국 변호사
한국은행 전문연구역
박성경 기자 psk@fetimes.co.kr